아주 짧은 머리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마음같아서는 반삭도 한번 해보고 싶었으나, 너무 과한거 같아서, 그냥 안하기로 마음을 정리했다.
그래도 좀 짧은 커트는 꼭 시도하려고 했는데, 해본 적이 없었다.
겁이나서라기보다, 미용실에서 안 잘라줘서, 가 가장 큰 이유.
인터넷을 뒤져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짧은 머리가 인기도 없을뿐더러 (사진조차 구하기 힘들다)
짧으면서 예뻐보이도록 자르는건 꽤나 실력을 요하는 거라 많은 미용사들이 꺼린다는 외국 글도 봤다.
어쨋거나, 한동안 커트도 많이 했고, 남편도 길게 기른 머리좀 보고싶다 해서, 마지막으로 아주아주 숏커트를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서, 커트 잘해준다는 미용실을 찾아서 갔다.
들어가니 처음이냐 해서 그렇다 하니 어떤 미용사를 지정해줬다.
여기서 나는 크나큰 실수를 했는데, 머리 자르는데 있어 중요한건 '미용실' 이 아니라 '미용사' 라는 사실이다.
들어가서 처음이긴 한데, 누구누구씨 계신가요? 하고 내가 지정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한것.
결국 역시나 평소처럼 손님 머리는 이러하고 저러해서, 너무짧은 머리는 못해준다는 얘기만 듣고 내 생각보다는 훨씬 긴 머릴를 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사실 머리 자체는 예뻤다. 객관적으로 잘 잘라줬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안찼다. 내가 내 돈 내고 내 성에 안차는 머리를 하고 돌아왔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다.
볼수록 '객관적으로는' 예쁜 머리라 그냥 있었는데, 어느순간 또 아쉬운거라.
그래서 나는 내가 생각해도 좀 어처구니 없는 자신감에 차서 내 머리를 내가 직접 자르기로 결심했다.
이소라씨도 자기 머리 직접 자른다잖아.(그러다 삭발까지 했다는 사실은 잊기로 하자)
요즘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 세상에 머리 자르는 법 쯤이야 어딘가 있지 않겠어?
막상 뒤져보니 앞머리 자르는 법 밖에 없다. 혹은 그냥 잘랐다는 후기가 끝.
영어자료를 뒤져보니 꽤 있다. 외국은 미용실비가 비싸서 그런듯 하다. 하지만 사진은 거의 없다. 인터넷이 느리다더니 그래서 그런가보다.
어설픈 영어실력으로 대충 읽어본다.나름 조언들이 있지만, 아주 특별한 비법은 없다. 그냥 혼자 자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구나 라는 용기를 주로 얻었다.
그리고 예쁜 외국 언니들의 사진을 참고용으로 모았다.
모으다 보니 나 원래 머리 짧은 언니들을 좀 좋아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오드리 햅번, 위노나 라이더, 나탈리 포트먼 등등.
대충 어설픈 준비를 하고 나니, 일단 빨리 잘라보고 싶어졌다.
망치면 미용실 가서 다듬어달라고 하지뭐. 그럼 어차피 이미 짧으니 짧게 못잘라주겠다는 소리도 안들어도 될거야. 밑져야 본전이지.
어제 다이소가서 숱치는 가위를 하나 샀다. 집에 아주 잘드는 문구용 가위가 하나 있어 이걸 메인가위로 쓰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오늘 낮에 머리를 물로 감아 적시고, 대충 털어내서 빗은 후 앞머리부터 자르기 시작했다.
샘플로 고른 사진은 엎머리가 눈썹 한참 위인데, 자르다 보니 나는 그렇게 자르면 안될거 같다. 난 내 이마가 나름 넓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좁아보인다. 일단은 눈썹 길일 자르자.
자르고 나니 옆머리가 무거워 보인다. 앞머리 선에 연결해서 귀쪽으로 내려가면서 자연스러워 보이게 노력하면 잘랐다.
아, 생각해보니 뒷머리부터 자르라고 했는데. 근데 뒷머리가 안보여. 거울을 들고 동시에 자를수가 없다. 그냥 손으로 만져서 손대중으로 대충 자른다. 머리 자르는 도중에 남편이 보고는 조심하라고, 그러다 영구머리 된다, 하더니, 아, 이미 좀 아닌가.... 하고 말꼬리를 흐리고 간다.
정말 이대로는 바가지머리 같아서 그냥 과감하게 층을 내기로 했다.
옆머리도 좀 더 잘라 귀를 좀 더 파고, 뒤도 중간중간 거울로 확인해가면서 더 짧게 정리하고, 되도 않는 실력으로 나름 층으로 내서 뒤와 옆을 좀 더 가볍게 잘라줬다.
그리고 숱치는 가위로 아주 자유롭게 마구마구 숱을 쳐냈다. 그러고 나니 어설픈 가위질이 좀 숨겨진다.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뒷머리가 티나게 삐뚤거나 삐져나온곳은 없는지 검사를 받고 머리를 감았다.
감으면서 엉망이 된 화장실도 청소했다.
젖은 상태에서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둬서 말리니 좀 봐줄 만 하다. 여전히 앞으로 일자로 내리면 좀 바보같지만.
머리가 전체적으로 더 가벼워졌다. 옆과 뒷머리르 더 잘라낼걸 그랬나 싶기도 한데, 일단은 만족. 앞으로도 종종 그냥 내가 자를까 하는 쓸데없는 자신감이 남아버렸다.
패션에 좀 무지한 사람 둘(우리 부부)이 보기엔 나름 괜찮은데 남이 보기엔 어떨런지 잘 모르겠다.
나중에 어설프게 남아 뻗고 있는 구렛나루나 좀 더 정리해봐야겠다.
이러다 바리깡까지 사는거 아닐까 몰라.